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건국한 뒤 약 230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한 국가였습니다.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당·신라와 대등하게 외교를 펼쳤고, 한때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정치·경제·문화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세기 초, 발해는 내부 권력 불안, 경제 기반 약화, 외교 고립, 그리고 거란(요)의 침공이 겹치면서 결국 926년에 멸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국가의 몰락이 아니라, 고려·거란·송이 얽힌 새로운 동북아 국제 질서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고려와 발해 세력 간 관계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 발해 멸망의 배경 — 내부 혼란과 외부 침입의 결합
✔ 내부 정치 불안
발해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위 계승 문제가 발생하고 귀족 간 분열이 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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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세력의 권력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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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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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 체제 붕괴
이로 인해 국가 운영력이 흔들리고, 지방 통제력도 약화되며 국가 체계 전반이 무너져 갔습니다.
✔ 경제 기반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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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내전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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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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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기반 붕괴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면서 발해의 국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 외교 고립과 국제 질서 변화
9세기 말~10세기 초는 동북아 국제 질서가 크게 요동치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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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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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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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세력 급부상
발해는 이 변화 속에서 외교적 활로를 찾지 못하고 고립되었습니다.
✔ 926년, 거란의 침입 — 발해 멸망의 직접 원인
요나라를 건국한 거란은 발해를 집중 공격했고, 926년 수도 상경 용천부가 함락되며 발해는 최종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동북아 정치 지형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2️⃣ 발해 멸망 후 고려의 대응 — 유민 수용과 고구려 계승 강화
발해 멸망 이후, 수많은 발해 유민이 남쪽의 고려로 이동했습니다.
✔ 고려 태조 왕건의 적극적인 발해 유민 수용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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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을 포용하고 정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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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관리로 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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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보강에 활용
왕건은 이를 통해 고려가 고구려·발해의 정통 계승국임을 내세워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했습니다.
✔ 발해 문화의 흡수와 고려 문화의 확장
발해 유민은 다음과 같은 문화를 고려에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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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식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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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군사 제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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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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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계통의 건축·복식·기마 문화
이로써 고려는 보다 다층적이고 다민족적 성격을 갖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 발해 멸망 이후 고려 vs 거란의 군사적 대립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곧바로 고려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이는 군사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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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침입 (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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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침입 (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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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침입 (1018년 — 강감찬 귀주대첩)
거란과의 전쟁은 고려가 군사력·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고려 통일의 발판 마련
발해 유민을 흡수하면서 고려는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강력한 인적·군사적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3️⃣ 발해 유민과 고려의 관계 — 문화·정치·외교적 통합
발해 왕족 대광현을 비롯한 유민들은 고려 사회 곳곳에서 활약했습니다.
✔ 문화적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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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계통 문화 재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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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식 군사·생활 문화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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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화의 다양성 확대
✔ 정치·행정 참여
일부 발해 유민은 고려 관료 체계에 편입되어 행정·군사에 기여했습니다.
✔ 고려 외교 정책에 미친 영향
발해 멸망 이후 고려는 다음과 같은 외교 전략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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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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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와의 교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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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경계 강화
발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고려의 전략적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4️⃣ 발해 멸망의 역사적 의미 —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출발
발해의 멸망은 단순한 국가 소멸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 대변동의 신호탄이었습니다.
✔ 고려의 고구려 계승 확립
발해 유민 수용을 통해
고려는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확보했습니다.
✔ 고려 중앙집권 강화
거란과의 전쟁은 고려의 군사·행정체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요나라(거란)의 부상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요나라를 완성하며 동북아 강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 민족·문화의 통합
발해 유민은 고려 사회의 한 축이 되어 고려가 다민족·다문화적 특성을 지닌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결론 — 발해 멸망은 고려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분기점
발해의 멸망은 고려가 고구려 계승국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국내 정치·군사 기반을 강화하며,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발해 유민의 문화·제도·정치적 기여는 고려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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